3·1절은 33인으로 구성된 민족대표가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당시 조선 인구의 약 2.97%가 참여한 삼일만세운동을 기념하여 지정된 국가기념일입니다.
< 배경 >
당시 조선총독부 하세가와 요시미치에 의한 무단 통치로 인한 일제에 대한 반발, 민족자결주의(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한다)로 인해 분위기가 고무된 상태에서 신한청년당의 무오독립선언(1919년 2월 1일)이 일어났고 그에 이어 고종 황제의 사망에 대해 독살설이 퍼지면서 삼일운동이 일어나게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 기미독립선언서 >
1919년 3월 1일 오후 3시경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습니다. 이후 조선총독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을 알리고 일제에 연행됩니다.
<기미독립선언서 원문 > 출처 : 위키피디아
宣言書 吾等은玆에我朝鮮의獨立國임과朝鮮人의自主民임을宣言하노라此로써世界萬邦에告하야人類平等의大義를克明하며此로써子孫萬代에誥하야民族自存의正權을永有케하노라半萬年歷史의權威를仗하야此를宣言함이며二千萬民衆의誠忠을合하야此를佈明함이며民族의恒久如一한自由發展을爲하야此를主張함이며人類的良心의發露에基因한世界改造의大機運에順應幷進하기爲하야此를提起함이니是ㅣ天의明命이며時代의大勢ㅣ며全人類共存同生權의正當한發動이라天下何物이던지此를沮止抑制치못할지니라 公約三章 一、今日吾人의此擧는正義、人道、生存、尊榮을爲하는民族的要求ㅣ니오즉自由的精神을發揮할것이오決코排他的感情으로逸走하지말라 一、最後의一人ᄭᅡ지最後의一刻ᄭᅡ지民族의正當한意思를快히發表하라 一、一切의行動은가장秩序를尊重하야吾人의主張과態度로하야금어대ᄭᅡ지던지光明正大하게하라 朝鮮建國四千二百五十二年三月 一 日朝鮮民族代表 孫秉熙 吉善宙 李弼柱 白龍城 金完圭 金秉祚 金昌俊 權東鎭 權秉悳 羅龍煥 羅仁協 梁旬伯 梁漢默 劉如大 李甲成 李明龍 李昇薰 李鍾勳 李鍾一 林禮煥 朴準承 朴熙道 朴東完 申洪植 申錫九 吳世昌 吳華英 鄭春洙 崔聖模 崔 麟 韓龍雲 洪秉箕 洪其兆 |
우리는 오늘 우리 한국이 독립국이며 한국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합니다.
이를 전세계에 알려 인류 평등의 큰 진리를 환하게 밝히며, 이를 자손 대대로 알려 민족의 자립과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이를 선언하며, 이천만 민중의 정성을 모아 이를 두루 밝히며, 영원한 민족의 자유와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하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박은 세계 개조의 큰 기운에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하여 이를 제기하니, 이는 하늘의 명백한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 인류 공동 생존권의 정당한 발로이기에 세상의 어떤 힘도 이를 막거나 억누르지 못할 것입니다.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의 희생이 되어 유사 이래 수천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압제에 뼈아픈 고통을 당한 지 이미 십 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그 얼마이며, 정신상 발전에 장애를 받은 것이 그 얼마이며, 민족의 존엄과 영광에 손상을 입은 것이 그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운과 독창력으로 세계 문화에 이바지하고 보탤 기회를 잃은 것이 그 얼마이겠습니까!
슬픈 일입니다.
오랜 억울함을 떨치고 일어나려면, 현재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장래의 위협을 없애려면, 땅에 떨어진 민족의 양심과 국가의 체면과 도리를 떨쳐 얻으려면, 각자의 인격을 정당하게 발전시키려면, 가엾은 아들딸들에게 괴롭고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자자손손에게 영원하고 완전한 행복을 안겨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바로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천만 겨레마다 마음속에 칼을 품은 듯 굳게 결심하니, 인류 공통의 성품과 이 시대의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주의라는 창과 방패로 호위하고 도와주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싸우니 어느 강도를 꺾지 못하겠습니까!
물러가 일을 꾀하니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겠습니까!
병자수호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배반하였다 하여 일본의 배신을 죄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학자들은 강단에서, 통치자들은 실생활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대대로 닦아 온 찬란한 위업을 식민지로 삼아 문화 민족인 우리를 야만족같이 대우하여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무도함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습니다.
현재를 꼼꼼이 준비하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 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지,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 자신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것뿐이지,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 남을 시샘하여 쫓아내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제국주의 통치배들의 부귀공명의 희생이 되어 압제와 수탈에 빠진 이 비참한 상태를 바르게 고쳐서 억압과 착취가 없는 공정하고 인간다운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우리 민족의 요구에서 나온 것이 아닌 우리나라의 침략, 강정이이었으므로 그 결과는 마침내 위압으로 유지하려는 일시적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들고 있는 오늘날의 실정을 보십시오!
용감하고 현명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과거의 잘못을 뜯어 고치고, 참된 이해와 선린을 바탕으로 우호적인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이 서로 간에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인 줄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원한과 분노에 쌓인 이천만 민족을 폭력으로 구속하는 것은 오직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하여 동양의 안전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사억 중국인들은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시기가 갈수록 두터워진 결과,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이 될 것이 분명하니, 오늘 우리 한국의 독립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의 선진후원국으로서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악몽처럼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한 동양의 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수적인 받침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겠습니까!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무력의 시대가 가고 도덕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과거 한 세기 동안 갈고 닦으며 키우고 기른 인도주의 정신이 이제 막 새로운 문명의 밝은 빛을 온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새 봄이 온 세계에 돌아와 만물의 소생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혹심한 추위가 사람의 숨통을 막아 꼼짝 못하게 한 것이 저 지난 한때의 형세라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때의 형세이니, 천지의 돌아온 운수에 접하고 세계의 새로 바뀐 조류를 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본래부터 지녀 온 권리를 지키고 온전히 하여 생명의 왕성한 번영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천지에 순수하고 빛나는 민족 문화를 찬란히 꽃피우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떨쳐 일어났습니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로부터 분연히 일어나 삼라만상과 더불어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억만대의 조상님들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새로운 형세가 우리를 밖에서 호위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입니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하여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입니다.
공약 삼장
하나. 오늘 우리의 이번 거사는 정의와 인도주의 그리고 생존과 영광을 갈망하는 민족 전체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인 감정으로 정도에서 벗어난 잘못을 저지르지 맙시다.
하나. 최후의 한 사람까지 최후의 한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흔쾌히 발표합시다.
하나. 모든 행동은 질서를 가장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합시다.
조선 건국 4252년 3월 1일
조선민족 대표
손병희 김병조 나인협 이명룡 박준승 오세창 최린 길선주 김창준 양전백 이승훈
박희도 오화영 한용운 이필주 권동진 양한묵 이종훈 박동완 정춘수 홍병기 백용성
권병덕 유여대 이종일 신혼식 최성모 홍기조 김완규 나용환 이갑성 임예환 신석구
출처 : 위키피디아
< 이후 및 기타 >
기미독립선언서 낭독이후 삼일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당시 조선인구의 2.97%가 참여하였으며, 일제의 무력 진압으로 인해 많은 피해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유관순 열사가 있지요. 이화학당 학생이였던 유관순 열사(1902년 12월 16일 - 1920년 9월 28일)는 삼일운동 당시 천안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에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삼일운동이 끝날줄 모르고 이어지자 "자제단"이라는 것이 발족되기도 했는데요, 표면적으로는 삼일운동이 폭력적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이를 막기위한 것이라지만 이후 삼일운동 진압에 대항 공로로 조선총독부로부터 "훈2등 서보장"을 수여받음으로 인해 설득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삼일운동 당시에도 유언비어와 선동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윤치호, 김창제등이 있는데요, 김창제는 조직적으로 퍼진 유언비어로 인해 평화시위가 폭력시위로 변질되며 이로 인해 일제의 잔인한 학살이 일어났다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윤치호는 처음부터 기미독립선언서 서명 요구를 거부하였는데요, 이유는 삼일운동을 민족주의자들의 무모한 행동이라는 것이였습니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 썸머타임,일광절약시간제(Daylight saving time, DST) (0) | 2017.03.24 |
---|---|
미국 캘리포니아 이케아에서 발견한 충격적인 루프시그 인형 (0) | 2017.03.01 |
2016년 겨울날 출근 길 앞에서 (0) | 2017.02.23 |
발렌타인데이의 유래 (0) | 2017.02.13 |
설연휴기간 공중파, 케이블 주요 영화 편성표 (0) | 2017.01.26 |